‘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16세기 중반-17세기 중반)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성리학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걸쳐 위치한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의 모든 측면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성리학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증거가 되는 유산이다. 서원의 향촌 지식인들은 학습에 정진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유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학습과 제향, 교류는 서원의 핵심적인 기능이었으며 이는 건물의 배치에 잘 드러나 있다. 서원은 그 지역 지식인들인 사림이 이끌었으며, 사림의 이해관계에 따라 향촌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번성했다.
서원의 위치에 가장 크게 고려되는 요소는 선현과의 연관성이다. 또 하나의 요소는 경관으로, 서원은 자연감상과 심신단련을 위해 산과 물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서원에서도 사방이 뚫린 건물은 그러한 경관과의 연결을 더욱 원활하게 한다. 학자들은 성리학 고전과 문학작품을 공부했으며, 우주를 이해하고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고인이 된 동시대 성리학자들을 배향하고 그들이 개척한 강한 학문적 계보를 형성했다. 나아가 서원에 근거한 다양한 사회정치적 활동을 통해 성리학의 원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에는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중등학교인 4학, 지방에는 관학(공립학교)에 해당하는 320개소의 향교와 사학(사립학교)인 700여개의 서원이 있었다. 서원은 인품이 훌륭한 옛 성현들을 본받고 관리를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기능과 제사를 통한 교화기능을 주축으로 하였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자 각 지역의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세계유산 등재기준(iii) :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 ‘한국의 서원’은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독보적인 증거이다.
비담평택 1화 소풍정원